취미

항공 사건사고 -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

hellokb 2021. 10. 26.
반응형

사고 개요

1989년 7월 19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출발, 일리노이 주 시카고를 경유해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도착할 예정이던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가 기체 결함이 생겨 2번 엔진이 파손되어 유압 계통 자체가 작동 불능이 되면서 오로지 남은 2기의 엔진의 출력 조절만으로 조종하여 아이오와주 수시티 공항에 겨우 비상착륙한 직후 파괴된 사건. 이 사건으로 296명 중 185명이 생존했지만 111명이 목숨을 잃었다. 2번 엔진의 파손 이유는 엔진 팬 블레이드의 결함으로 인한 피로파괴였다.

비행기가 대파되고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는데 185명이 생존했다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지만, 그 전에 유압 계통이 박살 나면 착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압 문제가 생기고 사람이 살아남은 민항기는 불과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없다. 이 사건이 사람이 살아남은 몇 안되는 유압계통 사고 중 하나. 사실 비슷한 상황에서 착륙에 실패하고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로 남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서도 생존자가 있긴 있었다.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과 상당히 비슷한 상황의 사고였는데, 먼저 발생한 JAL 123의 사고가 이 사고의 피해를 줄이는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승객으로 탑승했던 조종사가 JAL 123 사고 상황에서 유압계가 나갔을 때 비행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해당 기체의 등록번호는 N1819U이며 1973년에 제작되었다.

 

사고 진행

1989년 7월 10일 오후 2시경, 232편은 콜로라도주 덴버 공항에서 이륙하여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향한 비행을 시작했다. 기장 앨 헤인스(Alfred Clair "AI" Haynes), 부기장 빌 레코즈(William Roy "Bill" Records), 항공기관사 더들리 드보르작(Dudley Dvorak)을 포함해 286명이 탑승해 있었다. 헤인스 기장은 3만 시간의 총 비행 경력 중 숙련된 파일럿으로 인정받는 7천 시간을 DC-10기 조종석에서 보낸 베테랑이었으며, 레코즈 부기장 역시 2만 시간의 비행 경력을 50세가 되기 전에 이미 달성한 실력자였다.

이륙 후 1시간 10분 정도 지난 오후 3시 16분경, 오토파일럿을 가동한 채 아이오와주 상공을 순항 중이던 항공기 후미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수직꼬리날개에 달린 2번 엔진이 동력을 상실했다. 곧이어 위로 상승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기체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부기장은 조종간을 쥐고 요동치는 기체를 안정시키려 힘썼으나 조종실 시스템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장이 직접 조종에 나섰으나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더 기울어졌고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헤인스 기장은 유압 장치 고장으로 비행기 통제 시스템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유일하게 조절 가능한 1,3번 엔진 추력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했다. 좌우 엔진의 출력을 서로 다르게 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고, 양쪽 엔진의 출력을 동시에 높히면 속도가 빨라지며 기체에 가해지는 양력이 증가하여 고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는 오른쪽 엔진의 추력을 높이고 왼쪽 엔진의 추력을 낮춰 수평 비행 상태를 겨우 회복했다. 다만 비행기의 고도는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다. 엔진 추력 조절에 따라 널뛰기하듯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추력 조절의 미세한 균형을 상실하는 순간 곧바로 추락할 수 있는 불안정한 비행이 지속됐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일등석 탑승객 데니스 피치(Dennis Fitch)가 조종에 도움을 보태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기장이자 조종법 훈련교관으로, 누구보다도 DC-10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4년 전 일어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와 관련해 유압 계통 손상 시의 조종법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피치는 첫 폭발 당시 기내에 전해진 충격으로 무릎에 쏟은 커피를 닦던 중 비행기가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으로 인지했으며, 승객들을 안정시키러 돌아다니는 승무원에게 이런 의사를 밝힌 것이다. 승무원으로부터 피치의 말을 전해들은 조종사들은 당장 그를 조종실로 호출했다. 조종실로 간 피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경악했다. 훗날 그는 "조종사로서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기장과 부기장 모두 반팔 셔츠 차림으로 (항공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나머지) 힘줄이 솟고 관절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늘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이오와주 지상에 추락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부터 궁금할 정도였다."고 당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회고했다.

피치는 곧장 스로틀을 잡고 엔진 추력을 조절해 기체의 수평을 유지하는데 집중했으며, 헤인스 기장과 레코즈 부기장은 조종간을 잡고 기체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항공기관사 드보르작은 항공사 정비팀과 교신하며 시스템 고장을 수리할 방법을 물었으며, 상황이 여의치 않자 피치에게 자리를 내주며 엔진 추력 조절을 통한 항공기 통제에 힘을 보탰다. 네 사람은 지상과의 교신을 통해 가장 가까운 수시티 공항으로의 비상착륙을 결정한 뒤 추력 조절에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며 항로 설정과 하강 방향 및 속도 계산까지 마무리했다. 그렇게 232편은 추락을 간신히 면한 채 수시티 공항으로 향했다.

232편은 조종사들의 기지와 신들린 조종 능력 덕에 연료를 최대한 버린 다음 크게 우선회했으며, 끝까지 엔진의 추진력만을 이용해 방향과 고도를 조절하는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최종 접근 단계에 도달, 수시티 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다. 하지만 엔진의 동력만으로 기체를 제어해야 했기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활주로가 눈앞에 보일 정도로 낮은 고도라 해도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부드럽게 터치다운하는 방법을 쓰려 하다간 실속으로 바로 땅바닥과 정면충돌해 폭발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유압 계통이 전부 날아간 상태에서 플랩을 펼 수도 없었고, 기수를 들어 뒷바퀴부터 착지시키기도 어려웠기에 사실상 평소와 같은 착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Captain: Left turn, left turn. Close the throttles.
기장: 좌선회, 좌선회. 스로틀 다 내려.
F/O: Pull 'em off
부기장: 내리라니까.
Captain: Left turn. Close 'em off.
기장: 좌선회. 스로틀 내려.
Fitch: Nah, I can't pull them off, or we'll lose it. That's what's turning ya.
피치: 아뇨, 내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기체가 통제를 벗어날 겁니다. 방향 조절을 스로틀로 해야 합니다.
Captain: Ok.
기장: 알겠네.

(비행기가 활주로의 왼쪽에 치우치자)

F/O: Left Al!
부기장: 기장님, 왼쪽이요!
Captain: Left turn! Left! (x10)
기장: 왼쪽으로 선회한다! 왼쪽! (x10)
GPWS: Whoop Whoop Pull Up! (x4)
경보장치: (경고음) 기수를 올리세요! (x4)
Captain: Everybody stay in brace!
기장: 모두 충격에 대비해!
Captain: God!
기장: 주여!

(충돌음, 녹음 기록 끝.)

결국 232편은 정상적인 착륙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착륙할 수밖에 없었다. 착륙 당시 항공기의 속도는 200mph(=320km/h)로, 이는 웬만한 스포츠카들의 최고 속도이자 정상 하강 속도의 6배, 정상 착륙 속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고속이었다. 평상시에 비해 4배의 운동 에너지를 받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232편은 착륙 마지막 순간에 오른쪽으로 기울었으며, 이 과정에서 오른쪽 날개가 지면에 닿아 엔진이 폭발하였다. 엔진 통제력마저 상실한 기체는 그대로 활주로를 쭉 미끄러져 이탈하면서 4부분으로 분해되어 화염에 휩싸이며 대파되었다. 지상 소방대원들이 곧바로 출동해 화재를 진압하고 구조 활동을 벌인 덕에 185명이 생존했지만, 일등석과 후면부에 탄 승객 111명이 충돌과 폭발, 화염으로 인해 끝내 사망하였다.

 

사고 원인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정비 불량. 수직꼬리날개에 달린 2번 엔진의 팬 블레이드가 다년간 운항을 거듭하며 노후화되면서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음에도, 유나이티드 항공사 정비팀이 이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피로파괴였다. 피로가 누적되어 갈라진 팬 블레이드가 쪼개져 2번 엔진으로 빨려들어간 탓에 해당 엔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고속으로 회전하던 엔진의 원심력 때문에 튕겨나간 파편들이 꼬리날개 내부에 장착된 유압 장치를 망가뜨렸다. 유압 장치는 비행 시스템 제어의 핵심으로 항공기의 전면에 걸쳐 하나의 계통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꼬리날개 부분의 파손으로 비행기 전체의 유압 계통이 멈춰버려 통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조종사들의 훌륭한 대처

급박한 위급 상황에서도 조종사들은 서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 사회 심리학자는 조종사의 업무 수행을 연구하면서 예전 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사고 당시 조종사들이 충분히 의견 교환을 하지 않았다고 대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불시착 직전의 34분 동안, 비행기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비행기의 손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어디에 어떻게 착륙할 것인지, 승객들에게 안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으며,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 적절하게 전파하여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였음이 밝혀졌다. 승객 중에서 조종법을 연구 중이던 기장을 발견한 것도 이 때의 일. 가히 천운이라 할 수 있을 일이지만, 그만큼 시의 적절하게 효율적인 대처가 있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조종실 음성 기록 장비를 분석한 결과, 1분에 평균적으로 31회의 의사소통, 급할 때에는 초당 1회의 의사소통을 했음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18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셈이다.

네 명의 조종사는 착륙 당시 충돌로 비행기가 파괴되면서 조종실과 함께 떨어져나갔으나, 35분이 지난 시점에 소방대에게 구조되어 전원 생존하였다. 이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폴라리스상을 수여 받았으며 부상으로부터 회복한 이후 모두 업무에 복귀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데니스 피치 기장은 자신이 사고기의 정식 조종사가 아니었음에도 "112명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음을 알았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 내 목숨을 그들 중 누구의 것과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내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To find out 112 people didn't make it, that just about destroyed me. I would have given my life for any of them. It was a really tough time.)"라는 소회를 밝혔다.

앨 헤인스 기장은 착륙 충돌 당시 심각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병실에서 겨우 살아났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을 앓던 중 아내가 착륙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자 "내가 추락을 하고도 살았다고?!"라며 크게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 완쾌한 그는 사고 당일의 기억을 모두 회복했으며,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었다.

 

여담

'스틸 짝지음(Stille Coupling) 반응'을 발견한 저명한 화학자 존 K. 스틸(John Kenneth Stille) 콜로라도주립대 교수는 노벨화학상 유력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었으나, 232편에 탑승했다가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하며 끝내 기회를 놓쳤다. 또한 미국 컨티넨탈 농구 협회(Continental Basketball Association, CSA)의 임원이었던 제이 램즈델(Jay Ramsdell) 이사 역시 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데니스 피치 기장은 추락을 막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탰음에도 111명의 승객을 구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사고 이후 사흘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퇴직 후 뇌종양 판정을 받은 후에도 환자 이송 자원봉사를 위한 비행 등에 전념하다 2012년 5월 7일 뇌종양으로 인해 69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한편, 앨 헤인스 기장은 사고 이후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고 부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딸의 수술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 소식을 들은 232편의 생존자들이 수술비를 모금하기도 했다고. 그는 2019년 8월 25일 고향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87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11에서 '불가능한 착륙'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https://namu.wiki/w/%EC%9C%A0%EB%82%98%EC%9D%B4%ED%8B%B0%EB%93%9C%20%ED%95%AD%EA%B3%B5%20232%ED%8E%B8%20%EC%82%AC%EA%B3%A0)

반응형

댓글